▶ 선정이유
필사한 구절이 필자가 스스로를 믿지 못해 위태로울 때 삶을 견딜 수 있게 붙잡아 준 구절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게 될 때 찾아보는 구절이라 학우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 감상문
천희란의 『자동 피아노』는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읽었던 작품이다. 20살의 끝자락에 있던 당시의 필자는 대내외적으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었음에도 심적으로 꽤나 힘들었다. 더 열심히 살거나 더 잘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스스로 가장 괴롭혔고, 괴로워했다. 그때『자동 피아노』를 만났다.
해당 작품은 '자신의 고통에 함몰된 사람의 일기이자 타인과 교통할 수 없는 내면에 더 중요한 진실이 있다고 믿었던 자의 독백(144p)'이다. 일반적인 소설과 다르게 특정한 사건이나 요약할 만한 줄거리 없이 저자의 내면의 변화 위주로 서술되어 있으며, 저자가 영감을 받은 21곡의 피아노 음악을 각 장의 제목으로 설정했고 저자의 내면 변화를 피아노 연주에 비유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정한 이유나 사건 없이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라 읽을 때 다소 혼란스럽지만, 저자의 내면 변화에 대한 묘사 자체만으로 위로가 된다. 필자에게는 이렇게 불안하고 죽음에 대한 충동의 앞에 있는 사람도 자신을 견디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 시기를 이겨낸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사실이 큰 위로였다. 주위에서 아무리 얘기해줘도 와닿지 않던 것을 문학작품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마음에 새기게 되는데,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한 것이다.
누구나 삶이 힘들 때 기대는 음악, 문학작품, 사람 등이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그게 문학이었고 또 이 작품의 문장이었다. 책 속의 '평생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없다.(144p)', '얼어붙은 자기만의 세계를 단숨에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걸어볼 것이다. 익숙한 사물의 반대편으로 건너가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을 것이다.(146p)' 같은 문장들이 책을 읽은 후에도 사금처럼 마음에 남아 빛났다. 이런 문장들 덕분에 과거의 필자가 있었고 미래의 필자가 있을 것다. 문학이 돈도 안 되고 밥도 못 먹여주지만 밥 떠먹을 힘은 준다는 말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삶을 견디게 하는 단 하나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충분했다. 또다시 스스로의 한계를 긋고 혼자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이 책의 문장들이 그곳에서 필자를 끄집어낼 동아줄이 될 것이다. 품고 살 수있는 동아줄 같은 문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